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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독서

[도서_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적당히 하는 게 가장 어렵다

by 싯벨트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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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잘 하자

'적당하다'라는 단어는 마법이다. 사전적 의미 또한 '정도에 알맞다'로 정의되는 요 단어는 그래서 그 '정도'라는 것은 어디쯤인지에 대한, 그리고 '알맞다'는 것은 어디에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을 요구한다. 분명, 철학이란 '적당함'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내리는 과정에서 출발하고, 발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함에 철학 한 스푼을 넣은 것 같은 단어로는 중용이 있으며, 정의 또한 좀 더 철학적인 풍모를 보인다.

중용(中庸)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기준점이 2개인 흑과 백 사이에도 그라데이션으로 수많은 회색이 존재하고, 4가지 기준으로도 16가지의 성격유형이 만들어지는 MBTI처럼 너무나 다채로운 이 세상은 판단을 둘 곳도, 판단의 기준들도 너무도 다양하다. 그러나 만약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지점에라도 중간선을 긋고, 고찰 혹은 경험들을 통해 그 선의 위치를 꾸준히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1년 전의 기준과 오늘의 기준과 1년 후의 기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오히려 당연한 흐름이니, 다만 중용의 정의처럼 떳떳한 방향으로 가는지만 살펴보면 충분할 것 같다. 
 

문장들

실패

실패는 시도하고,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데 꼭 필요하면서도 유익한 부산물이다. - p13
다시 말하지만 그냥 넘어가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질문하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괜찮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더 잘할 수는 없을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의문을 던지는 것은 아프고 성가신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무감각하고 냉담해진 마음을 고칠 치료제다. - p177
그래, 이미 망쳤다. 다음번에 안 하면 된다. - p219

 실패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부정적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실패를 맛봤고, 그 맛은 분명 쓴 편이었을 것이다. 실패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결국 성공을 이루어 실패의 순간들을 과정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실패에 초연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더 나아질 나에게 현재는 가장 미숙한 순간일 것이기에 실패는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는 것은 불편하지만, 돌아봤기 때문에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중용

중용에는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고 실패하며 성공과 실패를 되돌아보는 과정, 즉 중용의 지점을 찾아 헤매는 멋진 과정을 계속 연마해야 다다를 수 있다. - p37
마찬가지로 중용도 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악덕’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용기의 중용을 찾고자 한다면 약간의 비겁함과 소심함이 필요한데 그것 없이는 너무 무모해지기 때문이다. - p111
또한 자신에게 해를 가한 상대에게조차 아무런 앙심을 품지 않으면 그 역시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거나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이다. - p112
화를 내야 할 상대를 향한 알맞은 양의 분노, 이것이 온화함이다. - p141

중용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그래서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는 것들을 경계했으며, 납득이 안 될지언정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마냥 좋은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은 어렵고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덕이라는 측면에도 적당한 악덕 혹은 분노가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라는 것은 내가 유지하던 생각과 달랐지만 단번에 납득이 된 문장이었다. 스스로를 착각하고 있었거나, 갈등에 겁을 먹었거나, 자존감이 낮았거나, 뭐가 됐든 좋지 않은 모습임은 분명하다. 화를 낼 때 이성을 잃은 모습은 혐오하기에, 화를 내는 방식을 온화하게, 알맞은 양의 분노를 표현해봐야겠다.
 

습관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그 사람이 좋은 상태에 머물게 하며 잘 기능하게 하는 것” - p29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덕 있는 행동을 해야 덕을 갖출 수 있다. - p32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쌓아올린 하루들, 행동들, 경험들이 근거가 되어 형성한다. 그것이 정체성이든 가치관이든 무엇이든. 그래서 비단 덕이 아닌 다른 무엇이든 갖추려면 그런 행동을 해야 갖출 수 있다. 
 

몰입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영이란 존재의 완전함에 있어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침내 인간 존재의 모든 면을 완성했을 때 몸속을 흐르는 완전한 느낌. - p28
불교 철학에서 진정한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깊이 집중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 자체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 데 있다. - p120

 사람이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무언가에 몰두하여 생각이 명징해지는 몰입의 순간을 느끼려면 일단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고, 어려움을 맞이하여 그것을 해결하려고 시도를 해야 한다. 그렇게 '지금'을 온전히 느낄 때가 행복의 순간인 것 같다. 
 

지식

훌륭한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의 명언을 빌리자면 “무지가 사람을 비정하게 만들 듯 ‘지식은 사람을 온순하게 만든다.” - p43
‘언제나 이래왔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마지막에 나오는, 그러니까 진정 무식에서 나오는 방패다. ...... 무언가를 해온 시간 자체가 그것을 계속할 좋은 이유는 아니다. - p189

나와 다른 이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존재를 분리하여 틀린 생각이라면 고칠 수 있는 게 지식의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사과

명확하고 확실하다. 괜히 버티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자신이 잘못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상처받았을 사람을 언급하고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표현한다. 이것이야말로 사과의 올바른 방법이다. - p244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은 참 어렵다.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미안함을 알아주었으면 싶고, 괜히 말로 꺼내기도 멋쩍고, 잘못을 감추려 상대의 잘못을 찾기에 혈안이 되기도 한다.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나를 포함한 누군가라면 위의 문장을 기억하고 사과의 순간에 적용해보자. 변명없이, 인정하며, 이 사건에 대해서만, 상대의 기분에 공감하며, 미안하다고.

불완전함

타인에게 완벽을 기대하며 불가능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현실을 부정하는 일 - p251

기준은 나에게 가장 빡세게. 완벽하지 않은 게 당연하기에 서로 노력하는 것 또한 당연하고, 그래서 아름답더랬지